▲ 알맹상점에서는 20여 종의 화장품을 포함해 5백여 종의 제품을 판매한다. 용기를 가져와 직접 필요한 만큼 덜어 무게를 재고 계산을 하면 된다. |
‘제로웨이스트(zero waste)’운동. 일상 속에서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 친환경 삶을 실천하
는 운동이다. 착한 소비에 대한 수요가 점점
더 커지면서 제로웨이스트운동이 확산되고,
제로웨이스트 가게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6월 15일 마포구 망원동에 알맹이만 다시 채우고,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상점이 문을
열었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를 내건
알맹상점에서는 이름 그대로 포장되지 않은 알맹이만 판매하고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
양래교 알맹상점 대표는 ‘망하지만 말자’라
는 생각으로 처음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알
맹상점은 양 대표를 비롯해 고금숙, 이지은
세 사람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임차료와
물건 대금을 밀리지 않고, 3명이 월급을 받아갈 수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시작이었다.
어쩌면 도전이고, 실험이었던 이 일은 장바구니를 모으는 일에서 시작됐다. 사회적 관계
망(SNS)을 통해 장바구니를 모으기 시작했고, 전국에서 모인 장바구니를 망원시장 상인
과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에게 배포했다. 시장을 기반으로 플라스틱 프리 캠페인이 이뤄졌고, 자발적으로 알맹모임이 결성됐다. 세제를
소분해서 판매하는 무인가게 운영을 시작으로 오늘의 알맹상점에 이르렀다.
‘한국형 제로웨이스트 가게’
6개월 운영 기간 동안 어려움도 있었다. 제조사에서 포장용기 없이 최소용량(20kg)으로
판매하려 들지 않았다. 위생과 책임 소재 등을 이유로 거절하는 회사들이 많았고, 최소
용량이라고 해도 소규모 상점에서 구입하기에는 금액 부담도 상당했다.
다행히 2군데 회사의 도움으로 샴푸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지금은 화장품만 20여 종류에, 알맹상점에서 취급하는 품목이 5백 종류에 달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알맹상점이 단순히 물건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단계에서부터
물건을 받는 과정까지 쓰레기 발생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
고 싶은 물건부터 팔기 시작했던 상점은 이제 고객들이 용기를 가져와 직접 필요한 양만큼 덜어 무게를 재고 물건을 사가는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 가게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실천가’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격상 전) 하루
평균 50여 명, 주말 2백여 명까지 방문하는
고객 대부분은 주로 20~30대 젊은 층이다. 망원동에 1인 가구와 젊은 세대가 많이 거주하
는 지역적 특성이 반영됐고, 청년세대의 가치추구 소비문화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직접 가져온 용기에 펌핑을 해 담고 무게
를 재는 수고로움이 그들에게는 색다른 체험이면서 환경을 살리는 선한 행동이다.
최근에는 아이들과 함께 찾는 가족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양 대표는 가장 기억나는 손님으로 노부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란히 사이좋은 모습으로 들어온 노부부는 우연히 들렀거나 자녀를 만나기로 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메고
온 가방에서 봉지를 꺼내 베이킹소다, 과탄산소다, 구연산을 담아 사갔다고 한다. 환경을 지키고, 지구를 살리는 실천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알맹상점은 개점 이후부터 꾸준히 주말마다 환경교육과 워크숍을 열어왔다.(현재는 코
로나19 확산으로 잠정 연기됐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샴푸바 만들기를 배우고,
비닐 포장지 대신 보자기 포장법을 익힌다.
이런 경험이 쌓여 지속 가능한 생활 속 실천
으로 이어지고, 생활의 전환이 이뤄진다.
▲ 과탄산소다, 구연산, 베이킹 소다 천연세제 3총사 |
▲스테인레스, 실리콘, 유리로 된 빨대와 나무 제품 |
우리 동네 재활용 회수센터
알맹상점은 재활용할 수 있는 물품을 수거한다. 수거된 물품 중 손바닥 보다 작은 플라스틱 뚜껑은 치약짜개, 화분, 생활용품으로
재활용되고, 운동화 끈은 알맹상점에서 판매하는 반달주머니 끈으로 사용된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3~4일 잘 말린 커피
가루는 커피 화분으로 탄생한다.
우유팩과 알루미늄 포일이 들어간 테트라팩(두유팩이나
멸균 우유팩)도 수거 품목이다. 특히 테트라팩은 일반 종이류에 섞여 배출되거나 종량제 봉투에 그대로 버려지는데 화장지나 핸드타올로
재활용되므로 꼭 분리해서 배출해야 한다.
기분 좋은 ‘거절하기’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해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
업, 그리고 개인의 힘이 모여야 한다고 양 대표는 강조한다.
가장 손쉬운 출발로 그는 ‘거절하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가령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젓가락, 포크, 숟가락 등을 거절하고, 카페에 가면 빨대를
거절해 보자. 재활용이 안 되는 빨대는 안
쓰는 것이 정답. 플라스틱이 아니더라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거절하면 된다.
기분 좋은 거절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다.
끝으로 생명살림운동을 하는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양 대표는 “부모님세대의 생활 지혜를 배워야 한다. 배울 점이 많다.
그 정신과 자세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예전에는 아껴서 잘 살자였다면, 지금은
지구를 위해 잘 살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좋은 일을 지속해나가길 바란다”라고 응원을 전했다.
옛말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큰일이라도 작은 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다. 우리 동네, 작은
가게의 선한 영향력이 지구를 지키는 희망으로 퍼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