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있다. 가짜뉴스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통신기술의 발달로 날개를 달았고, 불필요한 사회적 긴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가짜뉴스는 대체로 종편이나, 블로그, 트위터 등 신뢰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시작하여, 자극성이 높을수록 삽시간에 퍼져 나간다. 가짜뉴스는 상황에 맞추어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추론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이 조급하게 만든 거친 물건이다.
팩트체크를 통해 금방 가짜임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지만,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임이 밝혀지면, 가짜뉴스의 생산자는 본의 아니게 오해가 발생했다는 등 언론을 탓하거나, ‘아니면 말고’라며 뻔뻔한 얼굴을 내밀기 일쑤다.
부끄러움도 책임감도 없다. 오히려 상대의 이미지나 명예에 흠집을 남겼으면, 날조자는 ‘한 방 먹였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이런 자들을 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불순한 가짜뉴스 날조자와는 달리, 이를 퍼 나르는 사람들은 대개 순진한 부류다. 그러나 순진하다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러한 순진파 때문에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떡밥을 물어주는 순진파가 없다면, 가짜뉴스 날조자는 허탕을 치다 이내 사라질 것이다. 가짜뉴스의 떡밥에 낚이기 쉬운 순진파를 위해 세 가지 지침을 제시해 본다. 무엇을? 누가? 어떻게? 가 지침의 열쇠다.
첫째, 자극적인 표현을 의심하자. 자극적이어야 뉴스거리가 되지만, 세상에 기이한 일은 그다지 흔치 않다. 해외토픽감 수준의 제목이라면, 무조건 의심하자.“정치인 아무개의 재산이 수백조” “백만 원으로 30억 만들었다” “위안부는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믿을만한가? 의심하자.
둘째, 애매하면 “누가 이익을 볼까?”라고 묻자. 가짜뉴스는 현실의 복잡함과 애매함을 먹고 산다. 복잡한 세상사를 간단히 정리해 줄 때, 왜곡인지 과장인지 알기 어렵다면, 그 뉴스로 이익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묻자. “대북 쌀 지원, 핵무기 자금 된다” “해외이주 급증” 혹은 “취업률 급증”을 듣고, 수혜집단이 즉각 떠오르면, 의심하자. 손해 보는 집단의 시각으로 다시 보자. 우파의 소리든, 좌파의 소리든 한쪽으로만 귀를 열어두지 말고 이렇게 물어보자, 누가 이익을 볼까?
셋째, 인스턴트 뉴스를 멀리하자. 긴급한 상황에서 속보를 접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속보에 목말라야 할 상황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가짜뉴스는 출처도 없이 “카더라”에 의존하여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인스턴트 뉴스다. 요리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면, 음식의 풍미를 짐작할 수 있듯이, 가짜뉴스의 제작과정은 그 품질을 말해준다. 급하고 거칠게 만들어진 가짜뉴스는 출처가 없거나 진실을 온전히 밝히지 못한다. 출처가 분명치 않으면, 전문가든 친구(의 친구)든, 신문이든 그대로 믿지 말고 확인하자. “북한의 모씨가 처형되었다는 얘기가 파다합니다.” “소식통에 의하면, (전)대통령이 중병에 걸렸다고 합니다.”이렇게 출처가 애매한 “~카더라”라면, 의심하고 확인을 해 볼 일이다. 최소한 확인 없이 퍼 나르지 말자. 그러다가 진짜 경찰서에 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출처를 확인한 후에 확신을 갖고 전달해도 늦지 않다.
가짜뉴스는 자기 입맛에 맞는 인스턴트 뉴스만을 인터넷과 SNS에서 편식하는 순진파가 있기 때문에 범람한다. 가짜뉴스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성급히 자랑하고 싶은 순진파의 허영심 때문에 죽지 않는다. 복잡한 세계는 한마디로 파악하기 어렵고, 제대로 이해하는 데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가짜뉴스에 낚이고, 자신도 모르게 그 확산을 거들지 않으려면, 의심하고,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아무리 귀찮아도 해야 한다. 순진한 당신마저 불신의 대상이 되는 세계를 원치 않는다면, 의심하고, 물어보고,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