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저 로또 당첨되었거든요. 안녕히 계세요!” 직장인들이 자기 상사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 한국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매우 높은 수위다. 언제든 극단적인 감정으로 폭발하거나 중대한 질병으로 생활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군이 많다고 보고된다. 많은 샐러리맨이 일요일 오후가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하고, 목요일이 되면 주말이 임박하였다는 느낌에 기분이 가벼워진다. 이렇게 심신이 지친 상태가 만성화되면 업무의 효율이 떨어지고 회사의 경쟁력도 낮아진다. 그래서 최근 일부 기업들은 직원들의 휴식과 재충전에 특별히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야근과 회식을 금지하는 날을 정하여 일찍 퇴근하도록 종용하기도 하고, 2주 이상의 연속 쉬는 ‘집중 휴가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휴식이 왜 필요한가. 이런 연구 결과가 있다. 전쟁터의 병사들이 적들을 살상하고 막 돌아왔을 때 호르몬 수치를 재보면 정상 수치라고 한다. 그런데 돌아와서 몸을 씻고 커피를 한잔한다든지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조용히 살상의 순간을 다시 떠올릴 때 수치를 재면 호르몬 수치가 대단히 높게 올라간다. 흔히 살상을 하는 순간에 화학 생리적인 반응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가장 심한 반응은 그 행위들을 나중에 휴식을 위하면서 음미할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휴식은 단순한 이완이 아니라 정신의 또 다른 작동이다. 분주한 일상과 고단한 노동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와 행위를 객관적인 눈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거기에서 열린다.여가의 핵심은 번잡한 사회 속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불안, 분노, 질투, 권태 등의 정서가 사물을 바로 보는 눈을 가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엉뚱한 소통으로 상처를 입힌다. 그러한 오류들은 단순히 개인의 사사로운 번뇌와 갈등에 머물지 않고 공적 조직의 효율과 도덕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사소한 일에 마음에 균열이 일어나고 삶의 리듬이 깨진다. 새로운 출발을 거듭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자기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쳐 버린다.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가 결코 부질없는 낭비만은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자기의 정체를 알아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체계적으로 거세시키는 학교 교육과 사회 체제에 길든 몸을 바꿔가기 위해 언젠가는 겪어야 할 경로이다. 그러나 그저 수동적으로 겪는 것에서 머문다면 늘 제자리에서 맴돌 뿐, 본질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자기의 마음을 묶어놓는 굴레들을 명료하게 파악하면서 그것을 풀어헤치고 더 큰 마음으로 나아가는 정진(精進)이 요구되는 것이다. 직장인들 가운데 여름휴가를 템플 스테이로 보내는 이들이 있다. 휴식의 본원적인 의미를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안적 휴가 문화는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적 생활양식과 자연스럽게 조응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매일 겪는 삶의 불균형과 마음의 괴로움을 너머 그 이면에 크게 깔린 원대한 심성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중심에 자기를 다시 세우는 명상, 마음의 잡초를 뽑아 거름으로 삼으면서 비옥한 생활의 의지를 충전하는 수련에서 삶은 온전한 모습을 되찾는다. 비움으로써 오히려 가득 채워지는 여백의 역설이 거기에 있다.지식 정보사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것을 얼마만큼 확보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개인적인 생산성이 결정된다. 그 집중력은 고요함 속에서 자라난다. 외적인 자극이나 사물에 의존하지 않고 시간의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내면의 풍부한 율동이다. “위대한 일은 조용하고 단조로운 생활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