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유년은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될 게 분명하다. 광화문의 촛불 민심은 도도히 흘렀고, 대통령 탄핵을 가져왔다. 청와대는 상당기간 주인 잃은 공간이 됐고, 12월이 아닌 5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시대의 변화가 이처럼 극적이게 휘몰아친 적이 있었을까. 호헌 철폐를 외치며 군부 독재에 항거했던 30년 전의 1987년과 비교한다면. 당시 대학생으로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한 경험에 비춰 보건대 2017년에 훨씬 무게감을 느낀다. 대학신문이 대학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던 것도 맥을 같이한다고 보인다. 파사현정은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한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뜻을 갖는 불교 용어다. 대학교수들이 불교 교리를 사자성어로 꼽았을 리는 없을 터. 우리 사회의 잘못을 파헤쳐서 바로 잡았다는 의미에서 택했으리라. 공교롭게도 대학신문이 2011년 말 선정한 대학교수들의 2012년 사자성어도 파사현정이었다. 사자성어 선택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교수들의 2012년 염원은 2017년에 현실이 됐다. 민의(民意)는 대학교수들의 사자성어 외에 국민의 연말 건배사에도 담긴다. 요즘 가장 관심 있게 들은 건배사는 ‘땡큐’다. 건배자가 ‘2017년’을 외치면 참석자들은 ‘땡’으로, 건배자가 이어서 ‘2018년’ 하면 참석자들은 ‘큐’로 각각 화답한다. 감사하다는 의미의 영어 땡큐를 한 음절씩 떼어낸 건배사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무언가 끝났을 때를 뜻하는 땡쳤다의 땡,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연기를 시작하라는 의미로 주어지는 ‘큐’의 큐다. 건배자의 해석을 그대로 옮기자면 ‘2017년은 땡 쳤으니 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18년은 희망 속에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라는 뜻이다. 2017년의 다사다난함을 이처럼 고스란히 나타내는 건배사가 또 있을까. 무술년 새해는 희망과 기대와 만족만 가득한 한 해가 될까. 2017년을 파사현정으로 규정하려면 시간적 공간적 제한, 즉 2017년의 대한민국이 전제된다. 파사와 현정은 언제 어디서나 계속돼야 하는 개념이다. 또 파사가 곧 현정일 수도 없다. 파사현정은 지고지난한 작업이다. 주체와 객체가, 주연과 조연과 객석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 파사현정의 대상을 국가 간 문제로 넓히면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해법은 그만큼 찾기 어려워진다.지금 나라 안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회사, 기존 노조와 새 노조, 노동계 등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년 60세 법과 업황 부진으로 사회 초년생이 취업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노동계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인 민주노총이 청와대 만찬 초청을 거부하고, 집권당 대표실 점거 농성을 한데 이어 다음에는 어떤 행동에 나설지도 우려스럽다. 경제 활동의 첨병인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손발이 묶인 채로 글로벌 시장에 내팽개쳐 있다는 푸념도 적지 않게 들여온다. 사드 배치 이후 긴장도를 높여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지혜로운 균형점을 잡을 것인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초래하고 있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북한 사이의 새로운 외교·안보 판도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것인지. 나라와 나라 간의 문제는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풀기 어렵고 푸는데에도 시간이 많이 든다. 파사현정은 계속돼야 한다.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파사현정이 오래전부터 지속됐다면 ‘2017년 땡, 2018년 큐’라는 건배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2017년도 땡큐, 2018년도 땡큐’ 더 나아가 ‘올해도 땡큐, 내년도 땡규’라는 건배사를 만드는 것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