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내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2년간 8천1백85건의 거짓 주장, 또는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 하루 평균 5.9건의 허위 주장을 폈고, 2년 차에는 하루에 16.5건꼴로 거짓 주장을 한 것으로 WP는 분석했다.
‘거짓 뉴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예전이라고 가짜 뉴스가 없진 않았겠지만, 유튜브와 같은 각종 대안 미디어와 인터넷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그 전달 속도와 폭이 예전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지도자급 인사나 공적인 자리에 있는 인물들이 거짓 주장을 늘어놓는 건 흔한 일이다. 수많은 정치인이 일상적으로 진실을 왜곡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선전과 선동도 그 중 하나다.가짜 뉴스와 거짓 뉴스를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모든 진실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편견’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거짓과 진실을 분간하는 경계선이 모호해진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이는 애초부터 객관적 진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주관적 가치판단이 객관적 진실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윤리적 상대주의’의 폐해이기도 하다.사실 대중으로서 정보의 진실성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거짓된 정보라도 믿고 신뢰하려는 심리적 성향이 강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복되는 거짓 주장과 허위 정보는 개인이 정신에 대해 가진 이러한 순수한 믿음과 현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정신 능력을 파괴한다. 예컨대 사이비 종교집단이 신도들을 반복적으로 세뇌하는 현상, 국민에게 유대인은 무조건 타도해야 할 적이라고 믿게 한 독일나치즘, 자살폭탄 테러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케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도 그 범주에 속한다.반복되는 거짓 주장과 가짜 뉴스가 가진 또 다른 위험성은 그것을 믿는 개개인을 이성적 판단에서 멀어지게 함과 동시에 강한 충동과 극단적인 본능을 표출하게 하기 때문이다. 역사 현장에서도 그런 사실이 목격된다. 프랑스 혁명 당시 1만4천 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도 잘못된 집단적 신념과 충동에 의한 것이었다.총칼로 무장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내전, 탈레반의 참수, 게슈타포의 살상,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미국 KKK 집단의 흑인 살해, 일본의 만주 학살 등 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대량 학살 등도 예외가 아니다경자년 새해를 맞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뭘까. 보수와 진보 간의 질시와 증오, 심각한 갈등이 전국을 둘로 쪼개놓은 형상이 가장 먼저 그려진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놓고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벌인 대규모 집회에서 서로 참가자 수를 부풀려서 발표한 것도 수적 우세를 통해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더 획득하려는 여론전이었다.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런 극단적 상황까지 치닫게 됐을까.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사회적 대화’와 ‘관용’의 부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갈등을 치유하려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겸손함이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도 그래야 가능해진다.올해 4·15 총선이 불과 80여 일도 남지 않았다.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대변해줄 국회의원을 뽑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총선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자신만의 정당한 권리다. 하지만 역시 우려되는 것은 벌써 사회적 반목과 대립이 불거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상처를 입히기 위한 허위 정보와 주장이 무수히 쏟아질 게 뻔하다. 그래선 우리에게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다. 너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증오'가 아니라 우리 모두 살 길을 찾아보자는 '상생'의 정신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정치인을 보는 국민의 뿌듯한 마음속에서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솟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