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에서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꽃미남들이 요리 솜씨를 뽐내고, ‘쎄프’들이 각광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맛있게 생긴 음식을 입 안에 집어넣는 장면이 클로즈업되는데, 외국인들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다. 음식이 모자라서 배가 고팠던 시절이 지났건만, 우리는 먹는 것에 새삼스럽게 열광하고 있다. 어쩌면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먹방’을 즐겨 보는 이들은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간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물질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를 발달시켜준 매체이기도 하다. 사자나 호랑이는 사냥할 때 긴밀한 협동을 한다. 그러나 먹이를 잡고 난 다음에는 각자 알아서 뜯어먹는다. 분배를 한다면 자기 새끼의 몫 정도만 챙겨서 먹이는 정도다. 그에 비해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어떤 원칙에 근거해서 분배하는 문화를 탄생시켰다. 사냥에 참가하지 못한 약자들에게도 먹이를 나누는 품성이 자라난 것이다.
특히 한국문화에서 음식은 사회적 관계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 듯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 어느 영화에서 나와 유명해진 표현이지만, 일상에서 가끔 그런 안부를 묻는다. 생활고에 지쳐 있는 사람을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걱정해주는 한 마디다. 그런 특별한 사정이 아닌 경우에도, ‘식사 하셨어요?’라는 인사를 흔히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제안도 쉽게 건넨다. 차 한 잔 하자는 것보다 더 친근한 관계의 표시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서 밥 먹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강하다. 그런데 인간관계가 희박해지고 일인가구가 늘어나면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식사는 무엇을 먹는가 못지않게 누구와 함께 먹는가가 중요하다. 직장이 없어도 그리고 함께 밥을 먹을 가족이 없어도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일본의 선행 사례들이 많이 참고가 된다. 최근에 고령자들을 위해 다양한 복지 시스템이 창안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생활 공유 거주 공간이다. 기존의 노인홈과 달리 일반 주택에서 이뤄지는 생활이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노인들이 아침에 그 집으로 와서 하루 종일 지내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점심 식사 때 동네의 주부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함께 요리를 하고 점심식사를 한다. 어차피 혼자서 집에 있기가 무료한 분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노인들도 식사 준비에 동참한다. 심지어 어떤 치매 노인은 젊은이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예전에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기에 그 때만큼은 똑바르게 말을 한다. 노인들을 수혜의 대상으로 수동화시키고 노인들끼리만 지내야 하는 일반적인 복지 시설과 달리, 이곳에서는 노인들 스스로 뭔가를 해내고 시설의 경계와 세대의 장벽을 넘어 교류가 이뤄지기에 삶의 활력이 늘 샘솟는다.
‘식구’(食口)라는 말처럼 가족은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다. (회사를 뜻하는 ‘company’도 어원을 캐보면 빵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가족이 점점 해체되는 지금, 새로운 식구로 맺어지는 이웃들이 생겨나야 한다. 독거노인이나 결식아동이나 중증장애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그들이 한 곳에서 여러 동네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관청이나 사회단체에서 지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휴 공간을 활용하여 시도해 봄직하다.
미각은 그 자체로 기쁨의 원천이다. 밥맛을 잃으면 살맛도 나지 않는다. 식사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복의 요소다. 그 즐거움이란 음식의 맛, 함께 식사하는 사람과의 대화, 그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격조 있는 식사는 몸 전체에 신선한 기운을 솟구치게 한다. 허겁지겁 배 속에 음식물을 채워 넣기에 바쁜 궁색함을 벗고, 비록 조촐한 음식이지만 적절한 품위를 갖추고 즐길 수 있을 때 삶의 보람은 작은 데서부터 찾아질 수 있다.<김찬호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