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이루편에 ‘순천자 존 역천자 망’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연에 순응하면 살고 자연을 거스르면 망한다’라고 새기면 새마을의 생명살림운동과 맥이 잘 닿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탐욕을 쌓아서 불러일으킨 기후위기가 지구 전체의 생명체가 멸절될지도 모르는 파국의 문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전대미문의 생명의 위기에 대응하려고 새마을의 생명살림운동이 인간만이 아닌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생명체로서 지구까지 포함하는 뭇 생명 사이의 연대를 주창하고 있습니다.새마을의 생명살림운동에 대해 소개받고 접하다가 문득 같은 흐름이지만 색다른 생각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나’들의 연대, 즉 생명의 연대 혹은 ‘나’의 외부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 즉 개별 생명체의 본질 혹은 내면적 관점에서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도 자연 일부인데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거스르고 있지는 않은가?사람은 3분 이상 숨을 쉬지 못하면 살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사람은 숨을 쉬더라도 물과 음식을 3일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더라도 30일간 음식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하나씩 곰곰이 따져보면 사람생명의 신비한 혹은 자연 본연의 면모를 살짝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우선 음식을 먹는 방법에 대해 조상은 꼭꼭 씹어 먹어라, 천천히 먹으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먹어라, 적게 먹어라, 혀끝에 의존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어금니로 잘근잘근 씹어 먹으면 침이 잘 분비돼 소화도 촉진되고 식재료 본연의 풍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물은 벌컥벌컥 마시지 마라, 입에 머금듯이 마시라고 했습니다. 숨에 대해서는 ‘숨결’이란 말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주워들은 몇 마디에 제 사유를 덧붙입니다. 숨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대충 쉬어도 일단 생명이 지탱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숨을 잘 쉬는 징표나 방법에 관심을 둬본 적이 있는지요? 우리는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 화난 숨소리, 격한 운동에 따르는 헐떡거림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허약한 사람은 숨 쉬는 것도 기운이 없습니다. 아주 기뻐도 숨이 고르지 않죠. 마음이 잔잔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숨결도 매끄럽습니다. 스트레스와 자극이 많고 탐욕을 북돋우는 현대사회는 숨을 잘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호흡수련을 하는 곳에 가면 마음을 비우라고 합니다. 참 어려운 주문입니다.새마을의 생명살림운동이 언뜻 보기에 좋은 공기, 좋은 물, 좋은 음식을 되살리자는 취지이지만, 그것들을 생명작용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생명재료들의 조건을 맞춘다면 평균적으로 현대인의 생명작용이 과거보다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는데 역시 자연을 거스르는 탐욕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자연에 순응하고 탐욕을 버려야 내 안의 생명이 온전해질 수 있고, 자연에 순응하고 탐욕을 버리는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서 5백만 명이 되고 5천만 명과 70억 명을 아우를 때 임박한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촌의 생명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우리는 내 생명과 다른 생명을 함께 살리고자 멈추고 줄여야 합니다. 우리는 내 안의 생명을 온전하게 하려고 찬찬히 숨 쉬고, 찬찬히 물 마시고, 찬찬히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숨결을 느끼고, 물을 느끼고, 음식을 느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일부인 내 생명현상에 순응하는 길이고 탐욕을 비우는 걸음입니다, 이런 것들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지만, 현대의 생활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으니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함께 대응하는 것이 역시 도움이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결국, 눈을 두는 범위가 색다를지언정 근본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