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민 대상의 강의에서 “길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거래를 해야 한다면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한다.
시민은 잘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는 표정과 함께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잘 모르는 일반적인 사회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학술적으로 ‘사회적 신뢰’(social trust)라고 부른다.
시민의 반응은 객관적인 통계자료로도 뒷받침된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조사한 2019세계번영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167개국 중 28번째로 살기 좋은 나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간 신뢰 또는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 부문은 145위의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1995년 세계적인 석학인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신뢰」(Trust)라는 저서에서 한국을 콕 집어 ‘저(低)신뢰 국가’로 분류한 것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신뢰는 다른 사회구성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반영한다. 동료 시민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도덕적 행동만으로는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반칙과 범법이 쉬워진다.
반면, 높은 사회적 신뢰는 사회구성원 사이의 거래비용을 낮추고 협력과 갈등조정을 쉽게 만든다. 각종 통계는 사회적 신뢰가 높은 국가일수록 민주주의가 활성화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부패가 낮고, 국민이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는 반가운 뉴스가 있었다. 1964년 UNCTAD의 설립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바뀐 것은 한국이 최초라는 사실도 덧붙여졌다. 우리나라는 2012년 5천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국가 중 7번째로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은 나라가 되었다. 2019년 레가툼연구소의 세계번영 지수에서도 167개국 중 28위라는 비교적 높은 순위는 우리나라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낮은 사회적 신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급속한 국가발전을 이룬 원동력은 무엇일까? 민족 특유의 근면성만큼이나 높은 교육열이 만들어낸 인적자본이라는 점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9세계번영지수에서 교육접근성, 인적자본, 교육의 질을 평가한 교육 항목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에 위치한 것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2019세계번영지수에서 가장 높은 종합순위를 보여준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일까? 1위 덴마크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순이다. 이들 상위 5개 나라의 공통점은 사회적 자본 순위가 모두 10위권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석학들은 국가번영과 국민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놓치고 있는 연결고리”(missing link)가 사회적 신뢰로 대표되는 사회적 자본임을 강조해왔다.
대한민국 번영을 위한 마지막 퍼즐,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형성해나갈 수 있을까?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 학자인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남 교수는 1차적으로 마을과 같은 지역사회를 단위로 주민조직과 같은 결사체 활동을 통해 공동체구성원의 신뢰와 호혜(互惠) 관계를 회복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주민조직들 사이의 협력과 중첩된 활동이 신뢰와 호혜의식을 확장시키면서 사회적 신뢰도 향상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퍼트남 교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유유상종하는 주민들끼리 폐쇄적인 관계망을 만들고, 다른 주민조직 또는 공동체를 배척하면서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농촌에서 원주민과 귀농·귀촌민이 둘로 나뉘어 각자의 유대와 결속은 돈독히 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듯하다.
사회적 신뢰는 다소 이질적이라 하더라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호 협력하는 역량을 통해 “작은 승리”를 성취해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신뢰와 호혜의식에 의해 증진된다.
다양한 지역사회 주민조직 또는 마을공동체의 가교(架橋) 역할을 통해 대한민국 번영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며 시대적 소임을 다하는 새마을운동조직의 슬기로운 리더십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