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끝나겠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깊은 정신적 상흔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 상처의 흔적은 살다 보면 어쩌다 겪게 되는 그 어떤 정신적 충격보다 강도 면에서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이처럼 정신적 충격이 뇌리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는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트라우마는 개인만 겪는 것이 아니다. 공통적 경험 현장 속에서 사회도 겪고, 직접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도 겪는다.
코로나19는 한 개인이 아닌 집단 구성원 전체가 겪은 매우 특수한 경험의 범주에 속한다. 그 충격은 단순한 경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정치·사회적 입장에도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IMF 외환위기, 세월호 사태, 메르스 사태 등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특히 IMF 사태 당시 수많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쓰러지고, 실업자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자신의 부모나 가까운 친척, 친구의 부모가 파산하거나 실업자가 됐던 경험을 공유한다. 그때의 잊지 못할 충격과 쓰라린 기억은 장차 파산 가능성이 적은 안정적인 직장, 공무원을 선호하게 하는 트라우마가 됐다.
최소 고용의 관행을 정착시켜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상시화된 높은 청년 실업률과도 연관돼 있다.
국가적으로는 ‘금 모으기’를 통해 국민적 저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일부 부유층이 부를 더 높이 쌓아올리는 양극화 경험을 통해 사회 공동체의 개인 보호에 무력하기에 각자 살아나가야 한다는 의식을 강화시켰다.
그랬던 IMF 사태도 이번 코로나19 사태와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충격과 사회적 변화는 IMF 사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 범위도 한국 사회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이다. 한 세대를 넘어 수 세대에 걸쳐 정치·사회·경제·문화 체제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질병의 대유행)은 항상 왕조와 국가의 몰락과 함께 체제 변혁을 잉태하는 중대 사건이었다. 14세기 중반 유럽사회를 확 뒤집어 놓은 흑사병(페스트)이 그러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킨 흑사병은 노동력 부족, 경제력 집중에 이어 낡은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결국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기반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와 과학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한편 종교에 대한 맹신적 믿음을 약화시켜 인본주의와 르네상스를 탄생시킨 배경이 됐다.
앞으로의 인류 역사도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포스트 코로나)로 갈리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만 봐도 글로벌 밸류체인의 지역 밸류체인으로 바뀌는 흐름이 점차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쇼핑과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 교육 등이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고 비대면 활동이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전염병은 나 혼자 조심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보면 이 지구 상에서 인류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이 극명해졌다.
코로나19 사태는 결국 자연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환경을 오염시켜온 인간에 대한 자연의 ‘앙갚음’인 셈이다. 따라서 자연의 생태계를 보전하고 지키는 것이 질병을 예방하고, 인간이 안전해질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걸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할 때 오히려 지구 공기가 맑아지고, 생태계가 건강해졌던 ‘코로나의 역설’을 보더라도 전혀 틀리지 않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