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 새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조만간 한반도에 평화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날 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으며, 우리 정부의 운신 폭도 크지 않아 보인다.2018년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쌓아 올린 남북 간의 이해와 신뢰는 흔적조차 희미하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 협상의 중재자, 촉진자, 조력자를 자임했지만, 현 시점에서 그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올해의 5배가 넘는 방위비 분담금을 청구하고 있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는 나서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를 향해 독설을 퍼붓고 있다.이를 보다 못한 시민이 직접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운동에 나섰다. 우리 정부에게는 시민의 목소리를 등에 업고, 더욱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라는 주문을, 그리고 미국과 국제사회에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마중 물이 될 수 있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2017년 12월까지 취한 10여 차례의 대북제재 조치는 강도와 촘촘함의 측면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북한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우리나라도 제재를 회피할 수단이 마땅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재 탓으로 돌리고,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적극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문제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무관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대규모 현금지원 논란에서 자유로운 개별적 금강산관광에 대한 허용도 그 하나일 수 있다. 나아가 우리가 한국전쟁 이후 금지하는 북한의 신문과 방송 전면 개방, 서신 교환과 친인척 송금 허용, 여행금지구역 해제 등을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국제사회가 취하는 제재와 무관하게 우리 정부가 결심해서 결행하면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조치들이 우리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북한의 이간과 사주에 말려드는 자살행위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대 규모의 경제강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 시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열과 대결의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시대적 사고의 반영일 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조치들은 우리 사회의 북한에 대한 자신감과 진정성의 표현이자, 신뢰를 보내는 또 다른 행동이다. 북한 역시 자신들의 신문과 방송을 우리가 그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도 왜곡, 과장된 뉴스를 자제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북한에 대한 소식과 정보가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될 때 사이버 공간에서 기승을 부리는 북한발 가짜뉴스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일본문화 개방을 두고 우리 사회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러나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 이후 우리의 한류는 일본, 중국, 동남아를 넘어 세계적으로 문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당연히 북한의 신문과 방송 개방을 통한 북한문화의 수입은 우리의 또 다른 문화적 영감을 자극하고, 한류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체제 특성상 북한이 우리의 신문과 방송을 개방하는 일은 상당한 시일이 흘러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선제조치는 북한의 상응하는 조치를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며, 남과 북의 하나 됨을 위하여 조건 없이 서둘러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교류협력의 본격화를 위한 풍토, 사람, 제도, 기구를 긴 호흡으로 차분히, 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