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떠올리는 말입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의 개인사를 돌아보더라도 어려움을 계기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계획을 중단하거나 변경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려움은 지나가게 됩니다. 남는 것은 일의 성패가 아니라 어려움에 대처했던 내 자세가 남게 됩니다. 허둥지둥하거나 남의 탓을 했던 내 모습들은 두고두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비록 어려움으로 일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했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던 내 모습들은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지금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큰 어려움으로 닥쳐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공포감은 더할 수밖에 없고, 전례 없던 전파력으로 퇴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의 자발적 예방활동과 자원봉사, 간호사분들을 비롯한 의사들의 헌신적 의료 활동, 국가 및 지자체 공무원들의 노력, 지자체 간의 상호부조 등으로 우리는 지금 어려움을 극복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국민 대다수의 단합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나 말들을 하는 일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정확한 보도, 국민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언론이 아니라, 자극적인 내용으로 불안감을 더욱 조성하는 언론보도도 적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 유병언만 붙잡으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것처럼 했던 일의 교훈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정치인들은 다가온 총선 그리고 대선을 의식하면서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소위 ‘탓’ 공방입니다. 이는 결국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자 하는 일들입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과도한 비난이나 희생양 만들기도 이러한 일들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하지만 ‘누구 탓’을 찾기 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같은 일을 두 번 겪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라고 하는 엄청난 일을 겪고도 우리는 그 참사에서 어떠한 교훈도 얻지 못하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대못 하나씩 박힌 채 세월만 보냈습니다. 여태껏 우리는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안 여객선의 안전 항행을 위해 이후 어떠한 조치가 실천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서로서로 탓하면서 세월만 보냈습니다. 코로나19,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어떻게 했던지는 ‘역사’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부디 우리의 후손들에게 ‘마스크 사재기’ ‘남 탓하기’ ‘선거에 이용하기’와 같은 부끄러운 이야기를 남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차분하면서도 용감하게, 조심하면서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지혜롭고 의로운 선배들의 이야기로 기억되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사족입니다. 코로나19는 치사율이 낮으니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평소 질환이 없는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말이나 인식은 곤란합니다. 벌써 이 병으로 사망하신 분이 40명이 넘었습니다. 질환의 여부가 염려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나이, 성별, 계층은 물론이고 질환의 여부로 차별적 인식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로서로 염려하고 배려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