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밤을 설치게 하던 열대야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9월이 되자 평년 기온을 되찾아,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10월 들어 어느새 초저녁이면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우리의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은 엄연히 흐른다. 사회도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 나름의 흐름을 갖는다. 날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감기 몸살로 고생하듯이, 사회적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면 사회도 진통을 겪게 된다. 한국 사회는 지금 가을을 맞고 있다. 전환기에 알맞게, 고단하고 치열했던 여름을 돌아보고, 다가올 겨울에 대비할 때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 중반 산업화가 본격화한 이후, 1997년~98년 외환위기에 봉착할 때까지 40년 동안 우리는 ‘하면 된다’는 적극적인 정신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그르지 않게, 허리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한 만큼 어느 정도 성취도 얻었다. 그때는 굶주림의 시간이었고, 더 많은 물질을 위해 달린 시절이었다. 고난과 희망의 봄이었고, 열정과 성취의 여름이었다. 20년 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대량해고와 모든 것이 돈과 시장의 힘으로 좌우되는 각자 도생의 세상에 들어섰다. 청소년은 시험지옥과 취업전선에 내몰리고, 많은 직장인이 해고와 조기퇴직, 원치 않는 자영업으로 쫓기게 되었다. 고난 속에서 땀 흘리며 기다리던 우리는 수확과 풍요의 가을이 아니라, 공동체도 국가도 나 몰라라 등을 돌리고 모든 문제를 돈의 힘에 맡긴 채, 스스로 교육, 주택,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음산한 가을을 맞이하였다. 다행스럽게 사회의 가을은 자연세계의 가을과 달리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음산할 수도 있고, 풍성해질 수도 있다. 가을은 성찰과 사색의 계절이다. 실로 한국 사회의 가을은 성찰을 요구한다. 고령화와 부의 양극화, 더 많은 재화라는 물질적 신 앞에서 공동체를 잃은 외로운 개인들이 추운 겨울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찰하여 성숙을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성찰해야 할 핵심 가치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좋은 삶은 무엇인가?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는 사회적 가치만으로 우리는 ‘잘’ 살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봄과 여름이 가르쳐 준 것은 ‘하면 된다’를 각 개인이 열심히 알아서 노력하라는 말로 받아들일 때, 빈부의 격차, 지역 간 격차, 높은 이혼율과 자살률 등 사회적인 불행이 커진다는 점이다. 사람은 독립적인(in-dependent)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인(inter-dependent) 존재다. 남의 희생을 바탕으로 나만이 돈을 잘 벌 수 있는 약육강식의 사회는 불행하며, 지속될 수도 없다. 최근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터져 나오는 미투(me-too)운동이나 ‘갑질’에 대한 고발을 보면, 한국 사회의 여름은 일부 소수사람이 만들어 낸 지겹고 뜨거운 시간이었다. “모두가 같이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공존의 가치를 되찾아야 할 때다. 공존은 단지 함께 있다는 생각(共存 co-existence)이 아니라, 네가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고,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상호의존(inter-dependency)의 삶을 의미한다. 둘째, 공동체(국가)는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정부의 역할 강화, 특히 복지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충돌해 왔다. 이 충돌의 근원은 단순히 경제정책과 필요한 자금에 대한 재정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무료급식과 공공의료원 폐쇄 문제에서 나타난 의견 충돌은 각자 도생 원칙과 국가의 의무원칙이라는 대립에서 빚어진 충돌이다. 잘 사는 자는 잘 사는 자대로, 못 사는 자는 못 사는 자대로 내버려 둘 것이냐(자유방임국가), 아니면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냐(최소한의 복지국가)의 충돌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가치충돌이다.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적 성찰과 심사숙고한 선택이 요구된다. 한국사회는 가까이 다가온 겨울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뿐이다. 성찰 없이 바로 코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이다. 다가올 겨울이 냉혹하리라는 불길한 징조는 미투의 권력관계, 일상화된 갑질, 무상급식문제, 공공의료원 폐쇄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국사회의 가을이 시낭송과 사색을 넘어선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는 까닭이다. 성찰이 만들어 낼 따뜻하고 넉넉하며 다 함께 즐기는 겨울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