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학연수 대학생들을 인솔해 뉴질랜드 대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공항을 떠나자마자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지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마중 나온 대학의 관계자에게 수려하고 청정한 환경보전의 비결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뉴질랜드에서는 전기료가 비싸다는 것이다. 수력발전소 서너 개만 지으면 전기료가 내려가겠지만, 뉴질랜드 시민은 다음 세대를 위해 개발을 포기하고 높은 전기료를 감수한단다.
그전까지만 해도 다음 세대를 배려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마음의 습관이 된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관행화된 난개발로 훼손된 경관과 산림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모습이 교차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현존하는 세대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을 때, 다음 세대를 배려한다는 것이 사치처럼 인식될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한 때 국민 모두가 생존을 걱정할 때가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7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숙명론적 체념 속에서 보릿고개를 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 때, 근면하고 자조(自助)하며 협동하는 ‘국민성’의 감정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빈곤 극복의 일등 동력이 된 것이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가진 ‘국민형성’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족정체성 형성에도 크게 공헌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새마을운동이 출범한지 51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은 반세기전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촌(global village)으로 상징되는 세계화는 국민국가 정체성의 토대가 된 국경의 상대적 중요성과 의미를 약화시켜왔다. 사회문제, 자본, 노동, 문화, 정보의 실시간대 초국가적 이동과 연결은 어느새 익숙한 생활의 조건이 돼버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난과 감염병 같은 문제는 어느 국가도 피해갈 수 없는 초국가적인 의제로 받아들여진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지구상의 보편적 의사소통 네트워크는 탈(脫)민족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리사회도 ‘다문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면서 한때 우리의 자부심이었던 ‘단일민족국가’의 표현이 사라진지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시장과 경제의 세계화는 우리사회에도 소득양극화의 문제를 가중시키면서 사회계급간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 같은 전(全)지구적 문제는 지구의 생존이 곧 우리의 문제라는 시민의식을 요구한다. 우리사회의 다원화와 양극화 현상은 더 이상 동질적이라 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구성원들 사이의 평화적 공존과 갈등비용 최소화의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21세기 세계화에 따른 위협과 도전 속에서 슬기로운 해법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새마을운동은 위기의 민족 생존과 발전의 해법으로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제시했다. 이제 새로운 생존의 해석과 전략을 요구하는 지구촌 의제와 다원화된 사회의 공존의 해법으로 새마을운동은 생명·평화·공동체의 정신을 제시하고 있다.
새롭게 접목된 정신은 단순히 자연의 살아 숨 쉬는 생명 존중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배려한 우리의 생각과 실천을 요구한다. 평화의 정신은 우리사회 사회적 분화와 다원화의 해법으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포용적인 정치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새로운 공동체정신은 단순히 과거회귀적인 전통적 공동체 가치의 회복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실천과 참여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숙의하고 조정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과 연대를 모색하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동체를 지향한다.
지난 4월 22일은 새마을운동 51주년이자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후 11번째 맞은 ‘새마을의 날’이었다. 반세기 전 새마을운동이 위기의 한국을 구했듯이, 전환의 시대에 새마을운동의 정신과 실천이 구원투수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