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정세가 읽어내고 따라잡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수는 많지만, 변화의 방향은 크게 보아 긍정적이다. 물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고, 예상치 못한 복병과 평화로운 흐름을 저해하는 시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물론 미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국제사회도 모두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임하고 있다.전쟁불사를 외치던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현재의 평화국면을 만들어낸 동력들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전망도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낙관적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자는 메시지는 정권교체를 이룩한 대한민국에서 발원되었지만, 북한 역시 올해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기원과 참가 결정으로 화답했다. 한반도에서 절대로 전쟁은 안 된다는 공감은 남북 공히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으로의 진입, 높은 청년실업과 심화되는 빈부격차는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섬처럼 고립된 남한은 북한은 물론 대륙과의 새로운 연결과 진출을 통해 보다 많은 기회와 활동의 장을 찾아야 한다.북한은 제재 속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5백만 대 이상이 보급된 것으로 알려진 휴대전화의 존재는 더 이상 북한이 외부정보와 차단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들은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과 함께 보다 나은 삶이 구현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15만 군중 앞에서 남과 북의 지도자가 핵 없는 한반도, 평화적 공존과 공동번영을 이야기할 때 우레와 같은 함성으로 화답한 것은 바로 그러한 기대의 반영이다.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가로서 북한이라는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핵무기의 개발과 그것이 실린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상황의 연출이었다.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압박하기 위해서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매우 중요하다.중국은 미국과 끝이 보이지 않는 무역전쟁에 돌입해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에 중국이 소극적이라며 한층 봉쇄와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일본, 대만의 핵무장과 군비증강으로 이어져 동아시아 전체에 안보적 불안을 증폭시키게 된다.일본은 납치문제 해결과 대일배상금을 고리로 북일수교에 나설 뜻을 비치고 있다. 또한, 크림반도에 대한 무력병합 등으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남북의 철도와 에너지 수송망 구축을 통해 낙후된 극동 시베리아지역의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다. 물론 이러한 흐름과 반대되는 여러 가지 복병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북한과 미국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1945년 이후 아니 정권이 수립된 1948년 이후 만 70년 동안 지속된 적대관계가 일순간에 해소될 수는 없다. 폐연료봉 하나를 수조에 넣어 식히는 기간만도 2년이 걸린다. 하물며 완전한 핵물질·핵시설·미사일의 폐기와 개발인력, 관련 산업의 전환까지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북미 양측은 지루한 협상을 반복하고, 극적인 반전을 거듭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문제의 절대적 당사자이다. 우리는 조정자나 중재자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수립, 새로운 문명인 평화생명사회의 건설은 역사가 우리 세대에게 부과한 시대적 사명이다. 긴 호흡, 작은 차이를 넘어서는 담대한 결단, 상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으로 현재의 평화국면을 안착시켜 내는 것이 눈 밝고, 지혜로운 이들이 취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