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 령이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백악관 집무실에 그의 초상화를 걸었 을 정도로 그는 모든 대통령들의 벤치마 킹 모델이다. 국민들한테 인기가 높았다. 미국 최초 로 4선(選) 대통령이 된 것도 그래서다. 미 국이 이젠 중임만 허용하는 쪽으로 헌법 을 바꿔 그의 4선은 미국 역사상 전무후 무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절대적 인 지지를 받았다. 그랬던 그였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 하지 않았다.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1933 년 3월 미국 경제는 한마디로 만신창이였 다. 불황과 실업 사태는 장기화 조짐을 보 였고, 금융시스템은 마비돼 있었다. 당시 실업률은 무려 25%에 달했다. 길거리에는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여기에 몸도 성치 않았다. 39세 때 갑 자기 소아마비가 와 다리를 쇠붙이에 고 정시키고 비공식석상에서는 휠체어를 타 고 다녀야 했다. 병세도 보기보다 심각 해 직무수행 중에도 꾸준히 하반신 치료 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젊 었을 때 수영으로 다져진 튼튼한 어깨와 팔뚝을 주로 봐 온 탓이다. 휠체어 탄 모 습은 신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이를 알리지 않았 기 때문이다. 백악관 출입기자로 처음 발 령받은 신참 기자가 대통령이 휠체어 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사진을 찍으려하 자 동료기자들이 밀쳐서 카메라를 떨어 뜨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런 역경을 이겨냈기에, 뉴딜이라는 멋진 경제개혁을 추진했기에 그가 국민 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을까. 이 는 사실과 거리가 좀 있다. 그의 장애는 국민이 제대로 알지 못했고, 뉴딜정책도 좌파에겐 너무 약한 정책이라고 비판을 받았고 우파로부턴 급진 개혁책이라며 심한 반발에 부딪쳤다. 더구나 이것이 성공한 정책이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독점규제와 누진 소득세 도입 등 뉴딜정책이 추진되면서 미국 경제는 초반 반짝 효과를 봤지만 재차 마이너스 성장의 불황에 빠졌다. 미 국이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뉴딜보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 특수’ 덕분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많다. 그럼에도 그가 재임 당시에도, 그리고 90년이 흐른 지금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그 는 국민과 소통하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이를 통해 절망에 젖어있던 사회분위 기를 희망으로 바꿔놓고 국민을 한 마음 으로 결집시켰다.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s)’은 그 대표 사례다. 난롯가에 모여 다정하 게 대화를 나누듯 국민에게 친밀하게 말 을 건넨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로는 난 롯가 옆에서의 대화가 아니라 라디오 담 화였다. 그가 참모들과 난롯가에 둘러앉 아 대국민 담화문 초안을 다듬고, 암기 가 될 때까지 이를 큰 소리로 읽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2차 라디오담화부터 노변정담이라는 말이 붙여졌다. 그는 이런 노변정담을 1933년 3월 12일 부터 1944년까지 무려 30차례나 진행하 며 국민들에게 뉴딜정책과 세계대전 참 전이유, 파시즘의 위험성 등을 소상히 설 명했다. 아울러 수시로 국민들에게 위로 와 신념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쉽고 친근 한 일상의 언어로 국민과 허물없이 나눈 담화는 자연스레 국민의 공감과 신뢰로 이어졌다. 라디오담화의 평균 청취율은 평시 18%, 전시에는 무려 58%에 달했다. 그의 연설 중 “오직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말 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은 여전히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몇 개월 뒤면 새로운 대 통령이 탄생한다. 누가되든 어떤 개혁보 다 우선돼야 하는 게 국민과의 소통이라 는 점을 명심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