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응급실은 늘 긴박함이 흐르는 공간이다.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실려온 사람부터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까지 일분일초가 다급한 환자들이 연달아 밀려들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덜 위급한 환자들은 뒷순위로 밀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대목동병원의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는 그 상황에 대처하는 한 가지 비법을 갖고 있는데, 화를 내는 환자의 이마에 손을 얹는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열을 재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목적은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말로 달래는 대신 눈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그러면 거의 모두 분노를 누그러뜨린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은 마음을 부드럽게 확장시킨다. 그 첫 경험은 갓난아이가 젖을 빨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를 바라보며 이뤄진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말없이 서로 지긋이 응시하는 일이 줄어들고, 어른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 누군가와 대화가 오갈 때는 시선을 편안하게 맞추지만, 말이 잠시 끊길 때는 좀 부담스럽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만일 그냥 계속 쳐다본다면 좀 불편해질 것이다. 말이 오가는 동안에도 너무 똑바로 뚫어지게 보고 있으면 부담스럽다. 내가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은 단순한 시각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보는 그 눈은 동시에 나의 눈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에 어느 마음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상대방의 눈을 조용히 응시하는 순서가 있었다. 1분 정도였던 것 같은데, 무척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온전한 침묵 속에서 오로지 시선만 교환하는 동안 가슴에 스며오는 야릇한 감정들이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교감의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젝트로 EBS에서 2017년에 진행한 ‘공감 캠페인 눈맞춤’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이라는 슬로건으로 기획된 이 캠페인은 몇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하나는 자신에게 누군가가 눈을 맞춰주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공원에서 행인들에게 자신의 소망을 전하고 자원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7년간 달려온 무명 개그맨 아무개, 1분간 눈맞춤으로 기억해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 가운데 다가와서 1분 동안 마주 앉아 서로 바라보는 식이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참여해 짧은 시간 동안 무언의 격려를 보내며 자신 역시 위로를 얻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또 다른 방식은 참가자가 눈맞춤하고 싶은 사람을 정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상에 남는 사례는 광주의 어느 가족인데, 어린 세 딸을 키우던 엄마가 어느 날 남편과 사별했고 가슴에 멍이 들었지만 서로 힘들게 하지 않으려 슬픔을 애써 감추며 살아왔다. 그 가족은 아빠와 자주 가던 청보리밭을 찾아 엄마와 딸들이 한 명씩 번갈아 1분 동안 눈맞춤을 했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흘러나오면서 눈물이 흘렀고, 마지막에 포옹하면서 웃음이 오갔다.
우리는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터미널이나 철도, 공항 대기실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늘 켜져 있고, 스마트폰에는 일상의 권태를 달래주는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런 매체에 시선이 빼앗기는 만큼 다른 사람들과 눈을 정확하게 마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머리는 복잡하고 분주한데 왠지 허전하고 외로운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대화할 때 오롯이 눈길을 맞춰보자. 서로의 소중함을 일깨우면서 삶의 충만함을 채워가는 힘은 마음을 담은 대면에서 우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