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명을 뜻하는 ‘브랜드’는 말이나 소 등 방목하는 가축의 몸에 특정 목장의 표식을 불로 지진 표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브랜드(불로 지진 표식)가 없다면 소유자가 없는 야생동물인 셈이다. 최근에 본 ‘언브랜디드’는 야생마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대학을 갓 졸업한 네 명의 친구들이 야생마 16마리를 이끌고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의 남북 4828km를 종단하는 모험을 기록한다. 지도에 없는 험준한 지형, 사람과 말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선인장 밭, 통제를 벗어나 날뛰는 야생말 등 예상치 못했던 난관이 연이어 발생한다.
위급상황에서 이들을 돕는 늙은 카우보이는 “좋은 판단은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데, 경험은 나쁜 판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건넨다.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생고생이 결코 쓸데없는 경험이 아님을 위로하면서, 이러한 경험 후에 내릴 판단은 이전과는 달라야한다는 경구다. 카우보이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격언이라고 한다. 미국 서부의 멋진 풍광과 이들의 모험에 매료되는 순간에도 내 마음 한편에 이 말이 남아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자 선택 그 자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작은 선택에서부터 직업이나 거주지 등 중대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좋든 나쁘든 선택의 결과를 경험한다. 자신이 내린 판단과 선택의 결과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경험하게 될 때, 이 문제가 어떤 판단과 선택에서 비롯된 것인지 거슬러 따져보는 이유다. 우리 경험은 가까운 과거의 선택의 결과일 수도, 먼 과거에 내린 판단의 결과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되돌아 따져 보는 과정은 정밀하고 정직해야 한다. 당시의 상황과 판단의 근거를 꼼꼼히 살피고 자신이 어떤 점을 간과했는지 왜 그리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또 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릴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겪게 될 경험은 이전보다 더 혹독할 것이며, ‘경험을 통한 좋은 판단’의 길은 더 멀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판단과 경험의 이 같은 고리는 개인의 삶이라는 사적 범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로 시야를 넓혀보자.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한다. 미디어는 문제를 지적하고, 당국은 대처방안을 내놓으며 재발방지를 다짐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학대아동을 보호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미비한 제도를 탓하고 때론 관례를 핑계 삼는다. 환경훼손의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목숨까지 잃어버린다. 그때마다 재해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오늘의 뉴스는 몇 달 전, 몇 년 전의 뉴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발표하던 정부의 대책과 수많은 법규들은 과연 경험에 바탕을 둔 좋은 판단의 결과였나. 어제의 아픈 경험이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반성되고, 반추되지 않은 야생의 경험으로 남아 버리고 만 것은 아닌가.
‘언브랜디드’의 네 청년은 출발 당시의 계획을 백퍼센트 이루어 내진 못했다. 16 마리의 말 중에서 한 마리는 도중에 죽어버리고, 또 한 마리는 다리를 다쳐 돌려보냈다. 네 명이 나란히 국경을 넘겠다던 약속은 서로간의 불화로 인해 한 명이 도착점 1마일을 앞두고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지켜지지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수개월의 힘든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한층 성숙한 자세로 각자의 삶을 향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늙은 카우보이의 한 마디를 가슴에 깊이 간직한 채.
야생마를 몰고 대륙을 종단하는 도전을 택했던 청년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오늘 내가 내리는 판단이 어제 내린 잘못된 판단과 아픈 경험을 밑거름 삼은 좀 더 바람직한 판단이 되기를, 당신의 판단도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