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현시기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역시 코로나19사태이다.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이 인간 활동으로 빚어진 서식지 파괴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 많은 전문가가 동의한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는 외형적으로 특히 경제규모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무역, 국내총생산, 1인당 총소득 모두 대략 3배 정도 커졌다.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 노동자와 자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부자와 가난한 사람, 집을 가진 사람과 갖고 있지 못한 사람, 세대 간, 성별 간 등 공동체 내에서 집단 사이의 갈등이 아주 심각하다.
개인적 걱정거리는 노후에 대한 불안정, 취업과 실업·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앞뒤를 차지한다. 외형적 성장에도, 우리 사회 구성원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불확실하다. 불평등은 커지고 있고, 공동체는 사분오열되어 있지만, 정치적 지도력은 신뢰받지 못한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원인과 과정이 더해진 결과로서 단일한 해법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현시기 우리에게는 세 가지의 과제, 즉 지구공동체에는 기후위기·생명의 위기가, 인류공동체에는 양극화·불평등의 심화가, 여기에 더해 한반도 공동체에는 70여 년 이상 지속된 상시적 전쟁 위험의 노출이라는 삼중고가 있다. 우리의 모든 사회적 실천은 세 가지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귀결돼야 하나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이 누구 하나 이 삼중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제대로 된 처방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2021년 7월 15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추진 1주년을 맞이하여 ‘한국판 뉴딜 2.0 추진계획’을 확정·발표했다. 기존 뉴딜 1.0의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에 더해 ‘안전망 강화’를 ‘휴먼 뉴딜’로 확대·개편해 사람 투자 강화, 불평등·격차 해소를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재정투입도 2025년까지의 누적 총사업비 규모를 기존 160조 원에서 220조 원으로, 일자리도 190만 개에서 250만 개 추가를 목표로 한다.
뉴딜은 1930년대 대공황의 파고 속에서 등장했다. 공장이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계급적 갈등을 완화하고 자본주의를 구할 대규모 유효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주창한 정책이자 일종의 사회적 협약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뉴딜 논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완화하고,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 목적으로 제안됐다. 당연히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인 삼중고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탄소중립 목표를 2050년으로 명시하기는 했으나, 목표 연도에 따른 감축 수치 제시나 석탄발전소 폐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린 뉴딜에 농업을 살릴 방안도 없다.
문 대통령도 이야기한 ‘한반도 생명안전공동체’ 구축을 목표로 뉴딜 사업을 매개로 하는 남북 협력 사업 발굴 노력도 없다. 뉴딜이 힘을 갖기 위해서는 전 계층적 사회협약으로 작동해야 하는데, 논의가 공무원·전문가·기업 중심으로 한정돼 있어 실질적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생산자 대중인 노동자와 농민 등은 배제돼 있다.
유한한 행성에서 무한한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오늘의 위기를 또 다른 성장 담론인 한국판 뉴딜을 통해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시장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기술이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현재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 즉 뉴딜사업 추진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이 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지금의 잘못된 흐름을 저지할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은 이러한 근본적 물음에 답해야 한다.